옛 삼척군 장성읍 동점리(洞店里)에 엄종한(嚴宗漢)이란 사람이 살았다. 그는 집이 가난하여 식생활이 곤란하므로 매일 구문소에서 낚시와 그물로 고기를 잡아 십여명의 가족을 부양했다. 어느 날 해질 무렵에 그물을 쳐 놓고 이튿날 아침 일찍 그물을 건지려다가 실족하여 물 속에 빠져 정신을 잃었다.
잠시후 정신을 차렸을 때는 돌용의 배에 자기 몸이 찔리는 것을 깨닫고 순간적으로 자기는 죽었구나 하는 체념과 살아 헤어 나가야겠다는 결심등 착잡한 심경이 되어 버렸다. 그리하여 있는 힘을 다하여 눈을 감고 물밑을 기어 다시 큰 물 속을 들어가니 물깊이가 몇천 길이 되는 것 같았다. 위를 쳐다보니 중앙에 한 동천굴로 통하는 하늘이 보이는데 대낮의 햇빛이 눈부시게 비치고 평평한 모래밭이 십리나 되는데 돌이 태반이요 큰집이 즐비하게 늘어져 있고 인적은 없어 고요하였다.
그는 이것이 바로 구중궁궐이요 용왕의 궁중이라 생각하고 환하고 평평한 모래 길을 따라 걷다가 제일 큰 대궐 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대궐 안을 살피니 문 위에 두개의 그물이 걸려 있었다. 그중 하나가 잃어버린 자기의 것이기에 이상히 여겨 기웃거리며 만져 보는데 돌연 안에서 백발노인이 나오더니〈이곳은 인간 세상이 아닌데 무엇 때문에 왔으며 그것을 왜 만지는가?>고 물었다.
그는〈그물을 잃어 찾다가 실족하여 이곳까지 왔나이다.>하고 사실대로 말했다. 노인은 말하기를〈내 어린 두자식이 놀러 나갔다가 급류에 휩쓸려 죽을 뻔하여 화가 나서 그 그물을 가지고 와서 이곳에 두고 병이 나서 않고 있다가 오늘에야 완쾌되었다. 지금은 사냥을 가고 없는데 곧 돌아 올 것이다. 그러니 빨리 도망가거라.>라고 말했다. 엄종한은 당황하여〈길을 몰라 갈 수 없습니다.>고 하니 노인은 염려 말라고 하면서〈흰 강아지 한 마리를 줄 터이니 강아지를 따를 것이요 가는 도중에 배가 고프면 먹으라.>고 소매 속에서 흰떡 한 개를 주면서 길 떠나기를 재촉하였다. 흰 강아지가 꼬리를 치며 달려가니 어느덧 바다 깊은 곳에 이르렀다. 오는 도중 강의 좌우 풍경이 절경이었다 한다. 큰 파도가 일며 물 중간이 열리며 갈라져 큰 길이 나타났다. 자꾸 걷는 도중 배가 고파 흰떡을 먹으니 마음이 상쾌하고 배가 부르며 길을 걸어도 조금도 고달프지 않았다.
상당한 시간이 흘러 어느 한 곳에서 강아지가 멈추므로 살펴 보니 그곳이 바로 그물을 쳤던 곳이라 강아지와 함께 바위 위에 올라가 자기 집을 바라보니 무당의 굿소리가 나며 조문객이 오락가락 하였다. 엄종한은 이상히 여겨 알아본즉 자기가 익사하여 행방이 묘연한지 벌써 3년이 되어 두 아들이 부친의 탈상을 겸한 3년상에 영혼을 위로하는 무당의 굿소리라 하였다. 길을 인도하던 강아지는 즉시 죽고 흰떡은 흰 돌이 되었다. 강아지의 시체는 천천 뒷산에 매장하고 백병석(흰떡)은 엄씨가 잘 간직하여 가보로 모셨다. 그랬더니 그 뒤부터 점점 부자가 되었다고 한다.
3년만에 엄종한이 죽어 흰 강아지 무덤 근처에 매장하였다.
3년만에 엄종한이 죽어 흰 강아지 무덤 근처에 매장하였다.
그 뒤 경북 대현사람 조성이란 자는 엄씨의 사위로 집이 가난하여 장인이 백병석을 가보로 하여 천금의 부자가 된 것을 탐내어 여러 차례 딸에게 물려 달라고 하였다. 그러나 장인은 듣지 않고 깊이 숨겨 두었는데 장인이 죽은 뒤에 훔쳐 갔다고 한다. 엄종한의 묘는 지금 천천 뒷산에 있고 묘앞 비석에는 그 사적이 적혀 있으며 백병석은 안동 방면 조씨 가문 중에 보관되어 유물로 전하고 있다 한다.
이 이야기는 문집 [유계집]에 실린 것이 세상에 퍼졌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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