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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보성리에 살고 있는 이모네에 들렀다가 평소에는 무심코 지나쳤던 청동기 시대에 작품이라는 암각화를 자세히 둘러보았다. 그냥 얼핏 보면 잘 식별이 되지 않았지만 약간 어둑어둑해지는 저녁이나 야밤에 후레쉬로 옆에서 비스듬히 비추어 보면 그림의 모양이 뚜렷이 드러났다. 정말 누가 인위적으로 새긴 것이 분명했다. 청동기인들은 이런 그림을 왜 그렸을까?
경북 영천시 청통면 보성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암각화. 경상북도유형문화재 제286호. 긴 타원형의 암괴에 상하로 긴 장방형의 양측변을 안으로 오목하게 들어간 호형으로 처리하고, 중간에 선을 그어 아래 위로 양분한 후 두 개씩의 점을 찍은 것이다. 큰 그림의 경우 상하 길이 20㎝, 윗변 20㎝, 아랫변 16㎝이다.
<출처 : Copyright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궁금하기도 해서 인터넷에 찾아보니 이 물건이 제법 족보에도 올라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내가 어릴 때는 그냥 버스정류장 옆에 비바람 맞으며 걸터앉거나 기대는 용도로 사용되었던 것이 이제는 어젓하게 집한칸을 마련해서 들어앉아 있었다.
암각화는 선사시대 사람들이 바위나 동굴벽에 기호나 물건, 동물 등의 그림을 새겨놓은 것을 말하는데, 주로 농사의
풍요와 생산을 기원하던 주술행위의 결과물로 보인다.
이 암각화는 거북이 모양으로 생긴 바위 한 쪽 옆면에 7개의 그림을 새겨 놓았다. 그림을 새긴 면의 넓이는 최대 길이 337㎝, 최대 폭 130㎝이다.
<출처: http://www.ocp.go.kr>
수천년을 말없이 개울에서 굴러 다니다가 땅위로 올라온 이 말없은 거북바위가 현대에 와서 사건의 불씨를 던졌다는 이야기가 있어 들어보았다. 이 돌바위 하나 때문에 동네사람들 간에 싸움이 일어나 시골마을의 인심이 뒤숭숭해졌다고 한다.
처음 발견되었을 당시에는 길가에 엎디려 있던 바위가 누각안으로 들어가게 되면서 이 누각 관리를 누가 할 것인지에 대하여 시비가 붙었는데, 처음 시에서는 누각 바로 앞집에 이 누각의 관리를 맡겼지만 동네 사람들이 들고 일어나 시에 진정을 해서 어느 개인이 아니라 동네전체가 관리하도록 변경하였다. 동네 사람들이 이 거북 바위를 특별히 소중히 여겨서가 아니라 시에서 문화재를 관리하는 데에 대하여 소정의 관리비를 지급하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결국 문화재의 관리권을 약속받고 집 앞에 누각 설치를 허락한 이 집 주인은 문화재 관리권은 마을에 빼앗기고 뭇사람들이 빈번이 들락날락 하게 되면서 어려모로 불편만 겪고 있다고 한다. 이 집 주인으로서는 대문도 없는 이 집 마당에 버젓이 엎디려 있는 이 바위가 더 이상 이뻐 보일리가 없지 않겠는가?
어사 박문수가 이 마을에 방문한다면 마을의 불편한 심기를 고칠 수 있을 지 모르지만 이 앙금은 당분간 해결되지 못하고 오래 갈 거 같아 보인다.
보성리암각화에 대한 더 많은 사진 보기 : http://kr.blog.yahoo.com/jkyong51
<2010년2월28일>
경북 영천시 청통면 보성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암각화. 경상북도유형문화재 제286호. 긴 타원형의 암괴에 상하로 긴 장방형의 양측변을 안으로 오목하게 들어간 호형으로 처리하고, 중간에 선을 그어 아래 위로 양분한 후 두 개씩의 점을 찍은 것이다. 큰 그림의 경우 상하 길이 20㎝, 윗변 20㎝, 아랫변 16㎝이다.
<출처 : Copyright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궁금하기도 해서 인터넷에 찾아보니 이 물건이 제법 족보에도 올라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내가 어릴 때는 그냥 버스정류장 옆에 비바람 맞으며 걸터앉거나 기대는 용도로 사용되었던 것이 이제는 어젓하게 집한칸을 마련해서 들어앉아 있었다.
종 목 | 시도유형문화재 286호 |
명 칭 | 영천보성리암각화 (永川甫城里巖刻畵) |
분 류 | 석조기타 |
수 량 | 1기 |
지정일 | 1994.04.16 |
소재지 | 경북 영천시 청통면 보성리 666-2 |
소유자 | 국유 |
이 암각화는 거북이 모양으로 생긴 바위 한 쪽 옆면에 7개의 그림을 새겨 놓았다. 그림을 새긴 면의 넓이는 최대 길이 337㎝, 최대 폭 130㎝이다.
<출처: http://www.ocp.go.kr>
▲ 과거에는 버스정류소 옆에 놓여져 있었다
▲ 지금은 멋있는 누각안에서 보호되고 있다
수천년을 말없이 개울에서 굴러 다니다가 땅위로 올라온 이 말없은 거북바위가 현대에 와서 사건의 불씨를 던졌다는 이야기가 있어 들어보았다. 이 돌바위 하나 때문에 동네사람들 간에 싸움이 일어나 시골마을의 인심이 뒤숭숭해졌다고 한다.
처음 발견되었을 당시에는 길가에 엎디려 있던 바위가 누각안으로 들어가게 되면서 이 누각 관리를 누가 할 것인지에 대하여 시비가 붙었는데, 처음 시에서는 누각 바로 앞집에 이 누각의 관리를 맡겼지만 동네 사람들이 들고 일어나 시에 진정을 해서 어느 개인이 아니라 동네전체가 관리하도록 변경하였다. 동네 사람들이 이 거북 바위를 특별히 소중히 여겨서가 아니라 시에서 문화재를 관리하는 데에 대하여 소정의 관리비를 지급하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결국 문화재의 관리권을 약속받고 집 앞에 누각 설치를 허락한 이 집 주인은 문화재 관리권은 마을에 빼앗기고 뭇사람들이 빈번이 들락날락 하게 되면서 어려모로 불편만 겪고 있다고 한다. 이 집 주인으로서는 대문도 없는 이 집 마당에 버젓이 엎디려 있는 이 바위가 더 이상 이뻐 보일리가 없지 않겠는가?
▲ 거북바위 때문에 시골마을의 인심을 잃은 보성리 전경
어사 박문수가 이 마을에 방문한다면 마을의 불편한 심기를 고칠 수 있을 지 모르지만 이 앙금은 당분간 해결되지 못하고 오래 갈 거 같아 보인다.
보성리암각화에 대한 더 많은 사진 보기 : http://kr.blog.yahoo.com/jkyong51
<2010년2월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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