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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생활기/일상생활

상송초등학교

호주 멜번초이 2016.06.06 12:22

내가 어릴 때 다녔던 상송초등학교. 그 때는 상송국민학교[각주:1]로 불렸더랬지. 경상북도 영천군에서 청송군으로 넘어가는 노귀재 바로 밑에 있는 학교다.  내가 이 학교를 다녔던 때가 70년대 후반이었는데 그 때는 꽤나 많은 아이들로 북적였었다. 한 학년에 2반씩은 있었기에 전교생이 400명은 되었던 거 같다. 선생님들과 소사아저씨[각주:2]까지 해서 늘상 학교가 떠들썩하고 활기찼던 그런 시절이었다. 그러나 35년이 흐른 지금 다시 학교를 찾았을 때 폐허로 변해있었다. 버려진 학교를 돌아보면서 옛날 내가 뛰어 다녔던 회상이 교차되면서 마음이 착찹하기 그지 없다.

| 방치된 교적비

상송초등학교는 1946년12월5일에 개교하였다. 졸업생 2,025 명을 배출하고 농촌 젊은 인구의 감소로 인한 학생의 부족으로 2007년에 60년 역사를 뒤로하고 폐교되었다.  학교를 아끼던 학생과 선생님은 모두 간 데없고 학교 뒷산 풀숲에 묻혀있는 교적비만이 그 역사를 쓸쓸히 이야기해 주고 있을 뿐이다.

| 온 마을의 잔치였던 학교 운동회

학교의 운동회는 마을 전체의 운동회였다. 마을 학부모도 모두 오셔서 구경도 하고 줄다리기나 공굴리기, 달리기를 했었다. 고학년의 차전놀이는 매년 단골 메뉴였고 가장 인기있는 게임이었다. 저학년은 오자미[각주:3] 던지기가 필수 코스.  공중에 매달려 있는 커다란 박을 향해서 다같이 던져서 터트리면 반으로 쪼개지면서 '농자천하지대본' 같은 큰 글씨가 펼쳐 내려오게 되는 게임이었다. 차전놀이는 상대를 주저앉히거나 대장의 모자를 벗기면 우승, 박터트리기는 먼저 상대의 박을 터트리면 우승이다.

학교 계단 옆에 있는 과녁 같이 생긴 저것이 아직도 있네. 저기로 공 던지기 했던 것도 기억나네. 공을 던지면 공이 튕겨 나오기 때문에 혼자서도 심심하지 않게 던지기 연습을 할 수 있는 인기 장소였다.

| 아무도 찾지 않는 버려진 놀이터

그 당시 하루종일 매달려서 재미있게 놀았던 여러가지 놀이기구들이 이제는 모두 방치되어 있다. 작동이 안 될 정도로 녹쓸어 있다. 세상 만물이 이렇게 찾는 이가 없으면 이렇게 버려지는구나. 내가 아끼던 놀이터였기에 옛날 생각이 나서 눈물이 찔끔했다. 

| 귀신 나온다는 화장실

정말 귀신 나올 거 같아서 늘 겁이 났던 화장실. 푸세식, 재래식 화장실, 아래 공간 전체가 한통이고 메아리가 칠 정도로 넓어서 여기 앉으면 아랫도리가 써늘하도록 불어오는 냉랭한 바람 때문에 더욱더 쓰싼했던 곳이다.  그래서 늘 서둘러 마무리하고 귀신이라도 쫒아 오는 듯 황급히 도망 나왔던 곳이다. 

그리고 방과 후 집에 가기 전에 늘 이 화장실을 청소하는 게 일이었다. 쓸고 문지르는 물청소가 기본이었지. 꼭 조준사격을 제대로 못 하는 친구들이 있었으니까. 우리반 친구들은 청소하느라고 정말 고생 참 많이 했었지. 정말 그렇게 많은 구더기들과 싸우면서... 

| 잡풀에 묻혀버린 학교 공덕비


나무 숲 속에 묻혀 있는 공로비. 외롭게 방치되어 있었고 나무가 기어오르고 있었다. 나무 덩쿨 속에 묻혀 있는 것이 너무 안쓰러워서 기어오르는 풀이랑 나무가지를 모두 잘랐더니 그나마 위엄이 이렇게 나왔다. 


| 옛날 기억들

요즘 농촌에 어린이가 없고 노인들만 덩그러니 남아서 지키고 있는 모습이 일반적이지만 너무 가슴이 아프다.  골목마다 어린이들이 재잘거리며 뛰어 다니며 살았던 그런 행복했던 시골 풍경이 너무 그립다.  돌아와요. 1977년.

그 당시 상송초등학교는 가장 번화했던 저잣거리(저자거리)[각주:4] 에 위치해 있었다. 인근에 있는 상송, 하송, 용소, 아차골, 직당, 연지, 죽전, 법화 등에서 책보를 메고 밭둑길을 따라서, 개울을 건너고, 산길을 넘어서 걸어서 학교에 왔었다. 그렇게 똘망똘망하고 생기 발랄한 어린이들이 이제는 40대의 중년이 되었다. 이 저잣거리는 이 근처 마을의 중심이었다. 거기에 가면 점방(가게)에서 과자와 하드도 사먹을 수 있었다. 어른들 심부름으로 막걸리를 사거나 고기를 사러 이 곳 까지 왔었던 기억이 있다. 그 때 자야라고 20원하던 과자가 있었는데 참 맛있었다. 좀 더 저렴한 뽀빠이(10원) 도 있었는데 자야보다는 면발이 굵었다. 또 뱀을 잡으면 여기 저잣거리에 가지고 오면 50원에 팔 수 있었던 기억이 있다. 뱀을 잡으면 자야 두봉지와 뽀빠이를 사먹을 수 있었기 때문에 발견하는 즉시 필사적으로 사생결단으로 잡았던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 1학년이 뱀과 사투를 벌이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뽀빠이를 사먹기 위해서 작대기에 뱀 대가리를 묶어서 개선장군처럼 저작거리로 달려가는 모습을 생각만 해도 흐믓하지 않은가... 


<2016년4월>


  1. 국민학교라는 명칭은 일제의 잔재라고 하여 초등학교라고 이름을 바꾸었다. [본문으로]
  2. 학교에 자잘하게 수리할 곳이 있다던가 교구준비등을 도와주는 아저씨가 학교마다 한분씩은 있었다. [본문으로]
  3. 주먹만한 헝겊주머니에 콩, 모래 등을 넣어서 던지기 쉽게 만든 것 [본문으로]
  4. 가게도 있고 주막도 있고 육소간(정육점)도 있는 꽤나 번창했던 곳이라 저자(시장)이라 불렸던 곳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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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프로필사진 BlogIcon 하이 좋은 정보 잘보고 갑니다 2016.06.09 08:20 신고
  • 프로필사진 권현갑 So happy to see your memories of the hometown!! 상송 초등 학교 사무국장 권현갑입니다. 77년이라면 우리 후배 일텐데 고향은 동네는? 몇회 졸업을하셨어요. 반가워요. 기회가 되면 상송초 총 동창회가 잘 구성이-- 꼭 한번 놀러와요. 올해는 년말 12월17일 총회가 있어요. 혹 연락이 필요하시면 010-3547-4188 로 로 문의를 2016.11.03 19:09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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